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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숙소: 그리스 크레타섬


여행을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밖에서 보내고 숙소에서는 잠만 자기 때문에 
인테리어나 다양한 부대시설과 서비스는 관심이 없다. 잠잘 수 있는 깨끗함 정도만 유심히 살펴본달까.
숙소에 대한 감흥이 없는 내게, 아모스 호텔(Ammos Hotel)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가격으로만 따지만 저렴한 가격은 아니기에, 가성비가 좋다고 평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따뜻함이라는 그릇에 현대식 호텔과 크레타섬을 잘 섞어 담았다고나 할까. 

시설을 보면, 인근 호텔들처럼 작은 야외풀을 가진 깔끔한 콘도풍이다. 
콘도에서 조금 걸어가면 바다가 있고, 투숙객들은 비치 파라솔을 무료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내부는 심플하고 모던하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사진과 별 차이가 없었다. (http://www.ammoshotel.com/)

ⓒ splendia(http://www.splendia.com)

ⓒ booking.com(http://www.booking.com)


호텔 앞에 바다가 있어, 하루는 멀리가지 않고 동네 산책 후 파라솔 그늘 아래서 한껏 허세를 떨었다.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 나라와 달리, 드문 드문 떨어져 고요하게 머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호텔과 바다가 가까워 바다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관심
처음에 폭풍 구글링을 하다가 호텔에 직접 메일을 보내 예약을 하면서 호텔과 연락이 시작되었다. 
원래 궁금한 게 있으면 호텔에 다이렉트로 메일을 잘 보내는 편인데, 가뜩이나 정보가 부족한 곳이기에 질문이 많았다. 
통상적으로 유럽 사람들의 답은 시차까지 감안하면 꽤나 시간이 걸리곤 했는데, 
아모스는 거의 하루,이틀 내에 답을, 그것도 질문하는 것 이상의 알찬 정보를 주곤 했다. 

혹시나 해서 툭 던져본 관광지 문의에, 관광지와 음식점이 정리된 워드 문서를 보내주었고,
크레타에서 꼭 필요한 렌트카와 사마리아 협곡 투어도 좋은 조건으로 깔끔하게 예약해주었다.
예약 과정에서 확인 사항이 많아 여러 차례 메일이 오고 갔음에도 늘 빠르고 세심했다.
빈번한 일이라 하더라도 서너명의 메인 스탭이 스무개 남짓한 룸을 운영하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 게으르기도 하고 배만 부르면 되는 성격이라 여행하면서 맛집 검색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여느 날 처럼 무계획하게 눈을 떠서, 한 번은 먹어 보자 싶어 호텔 조식을 먹기로 했다. 
기대치 않았던 아모스 호텔의 조식은(9유로) 맛의 신세계였다. 
보통 호텔에서 보이는 구성의 메뉴는 기본이고, 다양한 로컬 푸드가 비주얼도 신선함도 흠잡을 데 없었다
훌륭한 조식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니, 그 이후 더 비싼 조식도 먹어봤지만 아직도 아모스가 넘사벽이다. 

the left of photos ⓒ http://www.smallhotelsingreece.com/hotels/crete/ammos


한 번은 저녁에 때를 놓쳐 기대 없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기본적으로 수준 높은 식당인 것 같았다. 
평범한 메뉴의 맛은 특별했다. 지인이 이 곳에 간다면, 음식만은 꼭 한 번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따뜻한 배려
사마리아 협곡 투어 전날 밤, 몇 시에 빵과 커피를 방으로 가져다 주면 되겠냐고 묻는다. 
새벽 5시라고 대답하고, 이런 룸서비스가 있구나 하며 잠들었고 다음 날 새벽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했다.


투어를 다녀와서 불편한 게 없었는지 우리에게 물어보고 다음날도 빵과 커피가 필요한지 물었다.
체크 아웃 할 때 알게 되었다. 서늘한 아침잠을 깨우는 따뜻한 커피와 빵이 무료임을.
본인들도 돌아가며 교대 근무 하느라 피곤할 시간인데도 베풀어준 마음이 참으로 따뜻했다. 


사람들
해외 여행을 하면서 종종 마주치는 룸메이드에 대한 인상은 한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고, 어색함 속에 시름이 묻어있는 굳은 얼굴로 인사를 하곤 했다. 
다른 스텝들도 잘 갖추어진 매너로 우리를 대하지만 일을 한다라는 느낌이 많았다. 
상냥하게 대하더라도 잘 만들어진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자연미를 찾는 것은 웃긴 일이다. 
나의 휴식은 누군가에게는 생계일테니, 나 또한 그들이 소비하는 무언가를 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익숙한 그들이 불만이었다기 보다는, 아모스 호텔에서 느낀 '다름'이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 http://bearleaderchronicle.com/site/entry_005/


그 하얀 호텔을 쓸고 닦는 게 다른 어느 호텔에 비해 고되지 않을 리 없음이 분명한데, 
웃음 속에 담긴 마음이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이른 새벽,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커피와 빵을 가져다준 스텝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내가 봤던 분들만 그랬을 수도 있고, 그 때의 내가 괜시리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밝은 에너지를 나눠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한 편으로는 고마운 일이다. 
시름이 가득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부터도 출근 즉시 썩은 얼굴....

어두워지는 호텔 앞바다에서 잠시 바닷바람을 쐬고, 또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늦은 밤, 발코니에 앉아 저 멀리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
오늘 하루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즐거움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언제고 또 고된 시간이 오더라도, 지금과 같은 순간을 꿈꾸며 견뎌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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